육산 박동국 (六山 朴東局,1897~1950)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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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 2026-01-2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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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산 박동국 (六山 朴東局,1897~1950)
해상도
1696 x 2528 px
파일 크기
6.38 MB
파일 형식
PNG
육산 박동국 종사
원보코드 : W1000120I0081
복원시기 : 원기 111년 1월 23일
복원기관 : 원불교 기록관리소
복원자 : 이산 고대진 소장
복원설명 : 원기 47년도 원불교역대사진첩 간행물에 실린 얼굴사진을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복원하였다.

인물정보 : 소태산 대종사 구인제자 중 한사람
후천개벽의 주세불이신 소태산 대종사의 친아우로서 최초 9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동참했던 육산 박동국(六山 朴東局) 대호법은 1897년 1월 18일,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부친 회산 박회경(晦山 朴晦傾) 대희사와 모친 정타원 유정천(定陀圓 劉定天) 대희사의 4남 2녀 중 사남으로 태어났다.
육산 대호법은 일찍이 한문사숙에서 수학하였으며, 당숙(堂叔)인 세규(世圭)에게 양자로 가서 가사에 조력하던 중 형이 깨달음을 얻자 제자가 되었다. 육산 대호법은 천성이 강직하였으며 기품이 호협하고 용모는 형인 소태산 대종사와 닮았다. 원기 2년 (음) 7월 최초 남자 정수위단을 조직할 때에 이방(離方)단원으로 임명되어 저축조합운동, 방언공사, 법인기도 등에 동참하였다.
원기 4년 법인성사를 이룬 후 소태산 대종사로부터 봉수 받은 법명이 동국(東局), 법호는 육산(六山)이며 본명은 한석(漢碩)이다.
법인기도를 마친 후에도 육산 대호법은 정신·육신·물질로 대도회상 창립에 힘껏 노력하였고 영광읍 연성리에 살며 가정 사정으로 인하여 전무출신을 하지 못했다.
육산 대호법은 비록 재가에 머물러 지냈지만 양자로 간 상황에서 소태산 대종사를 대신하여 모친을 직접 시봉했으며, 모친의 환후 중에는 형인 소태산 대종사를 대신하여 시탕함으로써 소태산 대종사가 안심하고 새 회상 창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여 공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
모친 시탕과 관련된 법문이 〈대종경〉 인도품 49장이 되었다.

대종사 봉래정사에서 모친 환후의 소식을 들으시고 급거히 영광 본가에 가시사 시탕하시다가 아우 동국에게 이르시기를 “도덕을 밝힌다는 나로서 모친의 병환을 어찌 불고하리요마는, 나의 현재 사정이 시탕을 마음껏 하지 못하게 된 것은 너도 아는바와 같이 나를 따라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이 벌써 많은 수에 이르러 나 한 사람이 돌보지 아니하면 그들의 전도에 지장이 있을 것이요, 이제까지 하여 온 모든 사업도 큰 지장이 많을 것이니, 너는 나를 대신하여 모친 시탕을 정성껏 하라, 그러하면 나도 불효의 허물을 만일이라도 벗을 수 있을 것이요, 너도 이 사업에 큰 창립주가 될 것이다”하시고, 또한 모친에게 위로하시기를 “인간의 생사는 다 천명(天命)이 있는 것이오니 모친께서는 안심하시고 항상 일심 청정의 진경에 주하시옵소서”하시고 강연히 그곳을 떠나 정사로 돌아오시어 제도사업에 전심하시니라.
육산 대호법은 그 후 계속하여 가사에 종사하다가 한국전쟁 때인 원기 35년 10월 4일, 54세로 영산에서 열반하였다.<2009,원불교기초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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