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박세철 (五山 朴世喆,1879-1926)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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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 2026-01-19 14:20
71 | 19
오산 박세철 (五山 朴世喆,1879-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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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 x 2336 px
파일 크기
5.29 MB
파일 형식
PNG
인물 : 오산 박세철 종사 (五山 朴世喆,1879-1926)
복원날짜 : 원기110년 12월 31일
복원기관 : 원불교기록관리소
복원자 : 이산 고대진 소장
사진용도 : 본 사진은 복원한 것으로 교화 활용 목적이며 인물 연구용으로는 활용할 수 없습니다.
인물정보 : 소태산 대종사의 최초 9인 제자 가운데 한 사람
오산 박세철(五山 朴世喆) 대봉도는 1879년 1월 16일,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천정리에서 부친 박다여(朴多汝) 선생과 모친 노(盧)씨의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에 당숙(堂叔)인 군서(君瑞)에게 양자로 간 후 농업에 종사하며 가정을 돌보던 중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이루자, 칠산 유건의 인도로 집안 아저씨 되는 소태산 대종사를 찾아와 사제지의를 맺고 원기 2년 (음) 7월 최초 남자 정수위단을 조직할 때에 손방(巽方)단원으로 임명 되었다.
원기 3년 방언공사가 시작되자, 오산 대봉도는 매양 선두에서 심혈을 다해 일하면서도 공은 언제나 타인에게 양보하였기 때문에 그의 주위에는 언제나 덕화의 기운이 연하였고,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항상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종전에 병으로 신음하던 몸이 약을 쓰지 않고 완치가 되어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오산 대봉도는 원기 4년 소태산 대종사의 지도로 8인 단원과 더불어 창생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였고, 마침내 생명희생의 대 서원을 올림으로써 천지신명이 감응하여 백지혈인을 나투었다. 이때 소태산 대종사로부터 봉수 받은 법명이 세철(世喆), 법호가 오산(五山)이며 본명은 경문(京文)이다.
원기 4년 겨울 오산 대봉도는 소태산 대종사의 변산 행가 시 배종할 때 험한 산길에 고생이 심했으나 소태산 대종사를 모시는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그 후 오산 대봉도는 소태산 대종사의 명에 의하여 영산으로 돌아와 옥녀봉 아래 구간도실의 수호책임을 맡아 정성을 다하였으며, 원기 6년 43세시에는 수년간 다소 저축하였던 금액 전부를 본교 기성조합에 희사하였다.
원기 10년 47세 되던 2월에는 우연히 내종병(內腫病)에 걸려 크게 위경을 맞았으나 양의(良醫)의 치료로 차효가 있음에 출가하기 좋은 시기라 생각하고 익산총부로 나와 전무출신 하였다.
원기 11년 소태산 대종사 사가가 전라북도 임실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이때 오산 대봉도는 팔산 김광선과 함께 가사 전반을 돌봐 주기도 하였으나 그해 6월부터 다시 전일의 병이 재발하여 그곳에서 한 달 가까이 신음하다가 7월에는 부득이 영산 자택으로 귀가하여 백방으로 치료에 노력하였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점점 병이 깊어졌다.

오산 대봉도는 자신의 병세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하고 자녀 손들을 불러 앉히고는 “나의 심신은 공중에 바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너희는 나를 사가 사람으로 알지 말고 사후에도 교중의 지시를 받아 초상절차도 신정예법에 의하여 집행하여 주기 바란다”고 유언하였다.
또한 임종을 지켜보는 정산종사와 삼산 김기천의 손을 꼭 잡고 비창(悲愴)한 어조로 “불초제(不肖弟)는 스승님과 형님들을 길이 모시지 못하고 먼저 가게 되어 죄송하옵니다. 형님들께서는 부디 오래 사시어 공부사업을 잘 하시와 인도정의의 기초를 확립하시고 세계문명의 선구자가 되어 주시며, 불초제의 앞길을 선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최후를 부탁한 후 최초의 9인 제자 중 가장 먼저 원기 11년 9월 6일, 48세로 열반하였다.
오산 대봉도는 9인 제자 가운데 키가 제일 작았으며, 체질이 약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큰 힘을 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천성이 선량하고 겸양하여 무슨 일이나 하기 어려운 일은 스스로 담당하는 특성을 가졌다.
오산 대봉도는 언제나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을 앞장서고 도맡아서 스스로 한 일에 대해 조금도 장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무상도인 이었다.
방언공사 때에는 9인 제자 가운데 40세로 최고 연장자였으나 건강이 약하고 힘이 부족해 직접 흙짐을 짊어지기가 어려우므로 밥 심부름, 물 심부름을 비롯, 모든 잔심부름을 연하인 동지가 시키더라도 조금도 싫어하지 않고 그것이 방언공사 하는데 자신의 소임으로 알고했다.
당시 외부 인사들은 소태산 대종사의 9인 제자 중 오산 대봉도가 인물이나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제일 뒤떨어졌다고 평했다.
그러나 소태산 대종사는 그의 위대한 천품과 훌륭한 특징을 인정하여 오산 대봉도를 “어느 국왕이나 유명한 재상과도 바꾸지 않으며 조선총독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밖으로 나타난 외모야 당연히 저 조선총독보다 못하지만 안으로 상없는 마음과 그 희생적 보살행은 조선총독과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인물이라고 평가한 것이다.<2009,원불교기초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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