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이순순 (二山 李旬旬, 1879-1941)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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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 2026-01-1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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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이순순 (二山 李旬旬, 1879-1941)
해상도
1696 x 2528 px
파일 크기
6.07 MB
파일 형식
PNG
이산 이순순 종사 (二山 李旬旬, 1879-1941)
복원연도 : 원기 111년(2026) 1월 15일
복원기관 : 원불교기록관리소
복원자 : 이산 고대진 소장
생산설명 : 인공지능으로 복원한 사진으로 교화 참고 자료용으로 활용할 수 있으나 사실 고증에는 사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인물설명 :
소태산 대종사의 첫 9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산 이순순(二山 李旬旬) 대호법은 1879년 9월 1일,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천정리에서 부친 이다익(李多益) 선생과 모친 김씨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천성이 호걸다워 호탕하게 놀기를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일면 온순 다정하기도 하였다. 키가 크고 기상이 늠름하며 성격이 활발하였던 이산 대호법은 창업기 교단에서 인화(人和)의 표본이 되었다.
이산 대호법은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이루기 전부터 이미 교분이 있었다. 32세 되던 해는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기 6년 전이었다. 이산 대호법은 이웃 마을에 살며 소태산 대종사의 외숙인 칠산 유건과의 친분으로 소태산 대종사가 세상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생활의 곤궁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산 대호법은 소태산 대종사께 민어 파시(波市)로 유명한 신안군 탈이섬으로 장사 떠날 것을 권하였다. 탈이섬은 법성포 앞바다인 칠산바다를 지나 남쪽에 위치한 임자도 곁에 붙어 있는 조그만 섬이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구호동 가족들과 상의를 하고 이산 대호법에게 보리 석 섬을 빌려 장사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며칠 만에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달이 걸리는 장삿길 이었다. 그리하여 장사를 위해 배꾼들에게 필요한 물자며 그 동안 먹고 잘 살림도구도 장만하였다. 일행은 소태산 대종사와 이산 대호법, 칠산 유건, 그리고 밥을 해 주고 살림을 돌봐줄 사타원 이원화가 함께 갔다.
소태산 대종사는 탈이섬에서 뱃사람들에게 식량 등 물자를 대주고 잡아온 고기와 교환하여 판매하는 장사를 시작하였다. 희한하게도 어찌된 일인지 소태산 대종사에게서 양식과 물자를 가지고 바다로 나간 고깃배는 모두 다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고기를 가득 잡아 가지고 돌아왔다. 이와 같이 석 달 정도 장사를 해 돈을 상당히 많이 벌었다.
그리하여 소태산 대종사는 부친이 남긴 부채를 청산하고 다시금 구도에 정진할 수 있었다.
소태산 대종사 깨달음을 얻기 전, 입정 당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노루목 초가집이 지붕나래가 걷어져 방에 비가 새어 소태산 대종사의 온 몸이 흠뻑 적셔지는 사태가 발생 하였어도 아무것도 모르고 입정에 들어 있을 때 이산 대호법이 노루목으로 달려가 지붕나래를 고쳐 주었다.
이와 같이 교분을 갖고 내왕하던 이산 대호법은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자 같은 마을 삼산 김기천의 인도로 12살이나 연하인 소태산 대종사의 제자가 되었다.
이산 대호법은 원기 2년 (음) 7월 26일 교단의 최초 통치단인 남자 정수위단을 조직할 때에 감방(坎方)단원으로 임명되어 허례폐지와 미신타파, 금주단연 등으로 저축조합의 자금조성에 심혈을 다하였다.
원기 3년 (음) 4월 간석지 방언공사가 시작 되었을 때 이산 대호법은 동지들과 함께 흙짐을 저 나르고 삽질을 하는 등 온갖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일호의 사심 없이 모든 난관을 감수하며 정성을 다 바쳤다.
또한 이산 대호법은 원기 4년 (음) 3월 26일부터 소태산 대종사의 지도를 받으며 단원들과 함께 창생을 구원할 새 회상 창립을 위하여 혈심으로 기도하였고 마침내 사무여한의 대 서원을 올림으로써 천지신명의 감응을 얻어 백지혈인을 나투었다. 이때 소태산 대종사로부터 세계 공명으로 봉수 받은 법명이 순순(旬旬), 법호는 이산(二山)이며 본명은 인명(仁明)이다.
그 후 이산 대호법은 전무출신을 단행하지는 못했으나 거진출진으로 회상의 발전에 협력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총부에서 영산에 내려갔다가 이산 대호법에게 정정(定靜)을 얻는 외정정과 내정정의 두 가지 길과 관련해 재가공부(在家工夫)하는 법을 지도하였다.
재가로서 영광 천정리에서 생활하면서 교단발전에 정성을 다하던 이산 대호법은 소태산 대종사가 원기 28년에 열반하자 총부로 달려와 스승을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누고 최초 9인 제자 중 생존해 있는 동지들과 기념촬영을 하였다.
이산 대호법은 원기 30년 11월 28일, 67세로 영광 천정리 자택에서 열반하였다. <2009,원불교기초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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