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이재철(一山 李載喆, 1891-1943)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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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 2026-01-0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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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이재철(一山 李載喆, 1891-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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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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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이재철 종사 (一山 李載喆, 1891-1943)
복원연도 : 원기111년(2026)
복원기관 : 원불교기록관리소
복원자 : 이산 고대진 소장
원본코드 : W1010329A0057
인물설명:
소태산 대종사의 첫 9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일산 이재철(一山 李載喆) 대봉도는 외교가 능하여 초기교단의 대외 간판 역할을 하였다.방언공사 시 허가 분쟁이 일어나 큰 곤경에 처했을 때 군청에 출입하는 등 뛰어난 식견과 언변으로 동분서주하며 위기를 면하게 하였으며, 익산총부를 건설할 때도 외교로 경제적 토대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일산 대봉도는 1891년 2월 11일, 전라남도 영광군 군서면 학정리에서 부친 이관현(李寬現) 선생과 모친 옥타원 김화옥(玉陀圓 金華玉) 여사의 4남매 중 독자로 태어났다. 부친은 함평·영광지역의 동학 접주(接主)로서 농민운동에 앞장선 인물이었으며, 모친은 소태산 대종사 법하에 귀의하여서 독실한 신심으로 수행에 적공하여 선력(禪力)을 인증 받기도 했다.
일산 대봉도는 원기 원년(1916) 4월, 사산 오창건의 인도로 소태산 대종사를 찾아뵙고 장차 교단 창설의 취지를 듣자 매우 기뻐하며 즉석에서 사제지의(師弟之義)를 맺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후 비몽사몽간에 본 경전이 〈금강경〉이었다. 일산 대봉도는 원기 원년 5월, 소태산 대종사의 명을 받들고 불갑사(佛甲寺)에 가서 금강경을 구해드렸다.
그 후로 일산 대봉도는 소태산 대종사의 대도를 봉대하는 마음이 날로 간절해지는 가운데 원기 2년 (음) 7월 26일, 교단의 최초 통치단인 남자 정수위단(男子正首位團)을 조직할 때에 건방(乾方)단원으로 임명되어 조합의 규정을 성실하게 수행함과 아울러 교단사업의 기초를 다지는데 헌신 노력했다.
저축조합 초기의 경제관계 사무뿐만 아니라 간석지 방언공사와 구간도실 건축에 온갖 정성과 혈심을 기울였을 때 일산 대봉도는 주로 외무일과 금전출납 관계 사무를 도맡아 처리했다.
소태산 대종사의 직접 지휘를 받으며 동지들과 더불어 흙짐을 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발바닥이 부르트고 어깨와 등이 부어올라 사뭇 못 견딜 지경이었다. 차라리 귀한 집 독자가 아니었다면 진작 흙짐 지는 연습이라도 해두었을 것을 하는 후회도 했다.
일산 대봉도는 원기 4년 (음) 3월 26일부터 소태산 대종사의 지도를 받아 8인 단원들과 함께 창생의 구원을 위하여 혈심으로 기도하였다.
법인기도 시 소태산 대종사가 단원들에게 “생사는 인간대사라, 만일 조금이라도 자신이나 가정은 물론하고 걱정스런 생각이 있거든 숨기지 말고 말하라”고 했을 때 효성이 남달리 장했던 일산 대봉도는 “창생을 위하여 자신 한 몸 죽는 것은 여한이 없으나 홀로 계신 모친이 걱정됩니다”고 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일산 대봉도의 심중을 헤아리고 “모친의 시봉은 내가 책임질 테니 안심하라”고 말했다.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명희생의 결심을 굳게 하였으며, 기도 마지막 날에는 환후 중인 모친에게 한약을 지어 인편에 전하기도 했다.
(음) 7월 26일(8.21) 마침내 생명희생의 대 서원을 올림으로써 천지신명의 감명을 얻어 백지혈인(白指血印)의 이적을 나투었다. 이때에 소태산 대종사로부터 봉수 받은 법명이 재철(載喆), 법호는 일산(一山)이며 본명은 재풍(載馮)이다.

일산 대봉도는 키가 크고 신상이 구족하며 위풍이 좋은 가운데 천성이 온순하여 누구를 대하나 항상 화기(和氣)롭고 겸손하였다.
영광지방에서는 이러한 일산 대봉도에 대해 ‘영광의 인물’ 이라는 평을 하며 ‘봉사가 만져 봐도 양반’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칭송이 자자하였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한 성격을 지닌 일산 대봉도는 아랫사람들의 세정을 일일이 살펴주었고 항상 용기와 희망을 넣어주었다. 그래서 후진들이 일산 대봉도를 대하면 어딘가 모르게 다정다감하여 친 부모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또한 일산 대봉도는 무슨 일이든 잘못하는 일이 있어도 절대로 여러 사람 앞에서 꾸중하는 일이 없었으며 항상 조용히 타이르고 자상히 가르쳐 주었다.
일산 대봉도는 언제나 소태산 대종사 앞에서는 손을 내려놓은 일이 없고 겸허한 태도로 공수(珙手)를 하며 물러날 때에도 그냥 뒤돌아서는 일이 없이 진퇴의 예를 갖추어서 행했다.
일산 대봉도는 심기(心氣)가 상통한 팔촌 동생인 도산 이동안을 소태산 대종사께 귀의시켰다. 바로 이것이 영광군 묘량면 신천리 함평 이씨 가문이 이 회상에 귀의하고 가문에서 수십 명이 전무출신하여 교단의 창립과 발전에 공헌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8인 단원과 함께 모든 어려움을 개척해가며 저축조합·방언공사·혈인기도 등을 마친 일산 대봉도는 출가 후 23여 년간을 영광 혹은 총부에서 교단 사업계의 중책을 맡아 초기교단의 경제적 기초를 다지는데 크게 기여 하였고, 원기 20년대에는 총부 서정 전반(庶政 全般)에 걸쳐 오직 교단발전을 위해 헌신 봉공하였다.
일산 대봉도는 영광군 백수면 천마리 자택에서 숙환으로 원기 28년 11월 15일, 53세로 열반하였다.
일산 대봉도는 스승인 소태산 대종사와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열반하였다. <2009,원불교기초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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