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산 이춘풍(薰山 李春風,1876~1930)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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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 2026-03-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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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산 이춘풍(薰山 李春風,1876~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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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산 이춘풍(薰山 李春風,1876~1930)
소태산 대종사 영산과 변산을 내왕하는 소태산과 그 제자들의 시봉을 맡는 한편, 종곡 사가와 실상초당을 왕래하며 소태산의 가르침을 받는 동시에 47세시에는 초기 경전 편찬에 조력했다.
시창 12년 산중풍경 저술 / 소태산대종사 종곡유숙터(이춘풍선진 집터)' 교적 제12호 지정

교단연표 : https://wonds.kr/chronology/?limit=10&search=%EC%9D%B4%EC%B6%98%ED%92%8D


본명은 지영(之永). 법호는 훈산(薰山). 정산종사의 외사촌 형. 1876년 2월 6일 경북 금릉군(현 김천시) 구성면 하원리에서 부친 현옥(鉉沃)과 모친 김씨의 1남 2녀 중 독자로 출생했다. 12세에 백부 현각(鉉珏)에게 출계(出系)했고, 16세에 경타원 정삼리화(敬陀圓鄭三零火)와 결혼하여 딸 여덟을 두었다. 그중 두 딸이 전무출신으로 항타원 이경순과 달타원 이정화이다.

1921년(원기6) 고모부 되는 구산 송벽조의 인도로 변산 봉래정사를 찾아 소태산대종사의 제자가 되고, 그해 겨울 부인(정삼리화)과 가족들을 데리고 전라도로 이사, 부안군 보안면 신복리 종곡으로 이사해 왔다. 종곡은 변산으로 드는 초입에 있는 마을로 영광과 변산간 노정의 유숙처로 알맞은 위치에 있었다. 이춘풍은 영산과 변산을 내왕하는 소태산과 그 제자들의 시봉을 맡는 한편, 종곡 사가와 실상초당을 왕래하며 소태산의 가르침을 받는 동시에 47세시에는 초기 경전 편찬에 조력했다.

어느 날 변산 내소사에 딸린 암자인 청련암 뒷산을 넘으며 소태산으로부터 다음의 법문을 듣는다. ‘험한 길을 당하니 일심공부가 저절로 되는도다. 그러므로 길을 가되 험한 곳에서는 오히려 실수가 적고 평탄한 곳에서 실수가 있기 쉬우며, 일을 하되 어려운 일에는 오히려 실수가 적고 쉬운 일에 도리어 실수가 있기 쉽나니, 공부하는 사람이 험하고 평탄한 곳이나 어렵고 쉬운 일에 대중이 한결같아야 일행삼매(一行三昧)의 공부를 성취하리라’(《대종경》 수행품34).

이춘풍은 1923년(원기8) 여름 소태산 모친의 열반으로 영광에 가서 영산원 건설에 몇 달 근무했다. 이 무렵 소태산이 이춘풍과 더불어 방언답을 둘러보며 주고받은 문답이 《대종경》 서품 10장이다. 소태산이 1924년(원기9) 변산에서 하산하여 불법연구회창립총회를 연 뒤 익산본관이 건설되자, 이춘풍은 사가를 내변산으로 옮기고 봉래정사 수호원의 책임을 맡았다. 이어 50세 되던 1925년(원기10)에는 익산 본관으로 나와 전무출신을 단행, 을축 동선(乙丑冬禪)의 여선원(女禪員) 교무로서 부인 회원들을 지도했고, 이어 3회~6회의 여선원 교무로 계속 근무했다. 이춘풍이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이사하여 소태산의 법하에서 공부하다가 전무출신을 단행할 무렵에 평소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유교와 불교의 진리를 놓고 심적 고통을 겪은 것을 털어 놓는다. 이와 관련된 법문이 《대종경》 변의품 20장이다.

이춘풍은 1922년(원기7)부터 6년간 부안 봉래산에 살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연구한 감각감상, 논설, 예문, 서간문 등을 1927년(원기12)에 편집한 《산중풍경(山中風景)》을 남겨 초기교단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되게 했다. 이는 《월말통신》, 《사업보고서》가 나오기 이전 교단 창립 제1대 제1회 내 교단관계 자료로서, 한 개인의 관점에서 그때 그때 느낀 바를 진솔하게 기록한 감상담, 서간문, 교리연구 등을 통해 봉래정사 풍경과 총부건설 당시의 풍경 일단과 동지들간의 교리 논쟁 등을 서술하고 있어 교단 창립 제1회 내 발전사를 연구하는데 주요 자료로서 평가되고 있다.

이춘풍은 법명처럼 온순 자애하여 사람을 사귈 때 자신의 이해를 돌보지 않았고 매사에 책임감이 강하고 강직하여 시종이 한결같은 실천력이 있었다. 또한 교단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의견안을 개진하여 불법연구회 총재에 대한 존칭을 ‘종사주(宗師主)’로 통일시켰으며, 지방 교당과 훈련 업무에 종사하는 전무출신에 대해 ‘교무(敎務)’로 호칭을 통일토록 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李大進,원불교대사전〉

사진원본코드 : WT1020007-000_043 이춘풍
복원날짜 : 111년 3월 3일 / 복원기관 : 원불교기록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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