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타원 정세월(七陀圓 鄭世月,1896~1977)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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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 2026-02-2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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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타원 정세월(七陀圓 鄭世月,1896~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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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타원 정세월(七陀圓 鄭世月,1896~1977)
서중안 정세월 부부 변산에서 대종사께 하산 간청.
교단연표 : https://wonds.kr/chronology/view.php?id=8&page=1&search=&limit=10

본명은 인흥(仁興). 법호는 칠타원(七陀圓). 불법연구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서중안(秋山徐中安)의 부인. 최초 여자정수위단원 역임. 1896년 1월 26일, 전북 김제군 만경면 인흥리에서 부친 문명(文明)과 모친 이명인화(李明仁華)의 10남매 중 5녀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천성이 활달하고 근실했으며, 3살 때부터 백부 슬하에서 양육되어 16세에 서중안과 결혼했다. 전처소생의 딸 둘을 친딸과 다름없이 사랑하여 인근의 칭송이 자자했으며, 부모를 효양(孝養)하며 하솔의 도도 분명히 하여 가족들이 모두 따랐고 이웃의 모범이 되었다.

1924년(원기9) 불법연구회 창립과 익산총부 건설에 초대회장인 부군과 함께 당시 3천여평의 기지 대금과 건축비 일부(6백여원)를 의연(義捐)했다. 1927년(원기12) 부군과 더불어 가산을 정리하고 교단 창업에 전무하기 위해 총부 구내로 이사했다. 그러나 부군은 우연히 발병하여 효차를 보지 못하고 1930년(원기15) 6월 2일 49세의 일기로 열반했다. 큰 슬픔이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1932년(원기17) 전무출신을 단행했다. 이후 총부식당 주임으로 7년간 알뜰한 공심으로 살림을 꾸렸으며, 1941년(원기26)부터 3년간은 총부 순교로 교화발전에 노력했다.

소태산대종사가 직접 여자정수위단 시보단을 조직할 때 여자정수위단의 일원이 되었다. 8ㆍ15광복 이듬해인 1946년(원기31) 전재동포구호소 주임으로 1년간 구호사업에 종사했으며, 1947년(원기32)부터는 총부 순교로 1년, 총부 내 감원으로 2년, 양로원 주임으로 1년을 일했다. 《회보》 제4호에 ‘공부하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의 구별’이라는 감상문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1935년(원기20) 동선 때는 소태산으로부터 초견성 인가를 받기도 했다. 1954년(원기39) 6월부터는 중앙수양원에 입원하여 수양에 힘쓰다가 1977년(원기62) 열반을 얼마 앞두고 ‘음력 구월 보름경에 가야겠다’고 미리 날을 받아 두더니 과연 9월 13일(양력 10월 25일) 82세로 열반했다.<원불교대사전>

기록물 원본코드 : WT1020007-000_002/복원날짜 : 원기 111년 2월 20일/복원기관 : 원불교기록관리소/복원자 : 이산 고대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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