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설법] 인생의 정로를 찾자-양산 김중묵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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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 2026-03-1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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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테이프 : 양산종사인과설법9_인생의 정로를 찾자_양산 김중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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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묵 [金中黙, 1920~1998] 종사
김중묵은 1920년(원기5) 6월 22일 전북 김제군 부량면 신두리 선인동에서 부친 정덕(正德)과 모친 연타원 박공리화(淵陀圓 朴公理華)의 5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6세부터 이웃마을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천자문》・《사서》・《통감》・《시전》까지도 착실히 배웠다. 《논어》・《대학》・《중용》 등은 줄줄 외울 정도였다. 당시 부친은 자수성가한 치산가로 넉넉한 살림이었다. 10세를 전후하여 ‘인생이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죽어가는 것이다. 인생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서 영원토록 사는 길은 없는 것일까?’ 하는 인생무상을 느끼고 생사의 문제와 씨름하며 자라났다.

이와 같이 생사문제와 씨름하면서 유식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사람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길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12세 때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머리를 깎고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신식교육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개성이 강한 편이어서 10세를 전후하여 술, 담배를 배웠고 장난이 심한 편이었다. 보통학교를 졸업할 무렵 김중묵은 “남아(男兒)가 뜻을 세우고 고향을 나갔으면 만약 배움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죽어도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선인(先人)의 글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 마침내 큰 결단을 내렸다. “내 이제 고향을 떠났으니 도를 깨치고 신선이 되기 전에는 죽어도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 그는 이렇게 입산출가하게 되었다.

어느 절에서 생천(生泉)이란 법명을 받고 여러 사찰을 찾아다녔으나 참 스승을 찾지 못하고 가슴만 답답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채귀원(蔡貴圓)을 만나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했다. “집을 떠나 스승을 찾아 이 절 저 절을 헤매었으나 참 스승을 찾지 못해 가슴이 답답하고 울적하기만 합니다.”, “도를 깨치고 싶은 뜻이 철저하다면 불법연구회 총부로 한번 찾아오게. 나는 그곳에서 소태산대종사를 모시고 공부하고 있는데 대종사야말로 그대가 찾고 있는 참 스승님일 걸세.” 이렇게 해서 김중묵은 1940년(원기25) 마침내 총부로 찾아오게 되었다. ‘소태산을 비롯하여 여러 어른들이 계신 이곳이야말로 내 영생의 고향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소태산은 처음에는 중묵(重)이란 법명을 내리면서 “너는 재주가 많으나 경솔한 데가 있으니 모든 일에 자중하고 묵묵한 공부를 해야 큰 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했으며, 약 2년이 지난 후 법명을 다시 중묵(中)으로 바꾸어주며 “이제부터는 모든 일에 중도를 잡는 공부에 힘써야겠다”고 했다. 김중묵은 《불교정전》을 읽다가 ‘일원상의 진리’를 보고 “바로 이것이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불로초, 불사약이란 바로 일원상의 진리였구나. 이 진리만 깨치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얻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중묵은 총부에서 여러 해를 산업부와 과수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과수원 책임자가 되어 상당한 기술도 습득했다. 당시 같은 또래들은 사무원으로 있었고 그는 여러 해 동안 노동일만 했으나 스스로 만족했으며, “대종사께서 나에게 무시선 공부를 가르쳐 주신다. 내 품삯은 일원상 진리가 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과수원 일을 하려면 나무에 제충(除蟲) 소독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수많은 생명을 죽이게 된다. 이 살생과보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를 소태산에게 질문한 것이 《대종경》 교단품13의 내용이다. “한 제자 교중의 과원(果園)을 맡음에 매양 소독과 제충 등으로 수많은 살생을 하게 되는지라 마음에 불안하여 그 사유를 대종사께 사뢰니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과보는 조금도 두려워말고 사심 없이 공사에만 전력하라’(《대종경》 교단품13)”. 여기의 ‘한 제자’가 바로 김중묵으로 그는 이렇게 인과의 이치에 대해서 탐구했다.

김중묵은 ‘유일학림’ 2기생으로 공부하게 되었는데, 이때 천문학에 흥미가 생겨 천문학 책을 보다가 영혼부정설을 주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정산종사가 김중묵을 불러 “중묵이가 요즈음 천문학 책을 보다가 영혼부정설을 주장한다는데 중묵이는 마음 대중을 잡아서 잡념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 “한 5분 정도나 될까요” “그러면서도 영혼부정설을 주장하느냐. 너의 마음이 맑고 고요해져서 밝은 지혜로 영혼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가라앉아서 두 시간 정도는 거래가 끊어지고 그런 상태를 3개월 정도는 계속할 수 있는 지혜라야 영혼을 판단할 수 있다. 과학은 과학자에게 묻고 영혼문제는 진리를 깨친 도인에게 물어야 한다”고 했다. 정산의 이 말에 김중묵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영혼의 문제, 삼세인과의 문제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그는 삼세인과의 문제에 한 경지를 얻기에 이르렀다.

1979년(원기64)에는 그동안 공부해 온 인과설을 집대성하여 《인과의 세계》를 저술, 발간했다. 《인과의 세계》는 많은 교도들에게 널리 읽혔고 김중묵은 인과의 법칙을 가지고 각 교당을 다니며 수백회의 교리 훈련을 가졌으며, 49재나 법회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며 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받았다. 그는 수행의 정도가 깊어감에 따라 욕심과 사량계교가 떨어져 갔으며 무심도인, 무애도인으로 그 신앙이 두터웠다. 1998년(원기83) 5월 4일 열반에 들었다. 1988년(원기73) 5월 제122회 수위단회에서는 2대말 성업의 결산기를 맞아 김중묵의 법위를 정식출가위로 사정하고 그의 공덕을 기리며 종사의 법훈을 서훈키로 결의했다. 〈韓正釋,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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