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명바위 (방언공사 준공기념 명문) > 원불교 기록 표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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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기록 표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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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함 | 제명바위 (방언공사 준공기념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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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록관리팀 작성일18-12-26 13:48 조회12,0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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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제명바위

▣ 부제 : 방언공사 준공기념 명문
▣ 날짜 : 1919 (시창 4년 4월/ 음 3월)
▣ 내용 : 불법연구회 창립 이전 영산시대에 개펄막이 방언공사의 준공을 기념하여 바위에 금석문 형태로 제작한 명문(銘文).
▣ 참고 : 방언조합의 설립과 방언공사
일제 관(官)이 주도하는 조합이 아닌, 민간인에 의해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에 방언조합이 설립된 것은 1917년(원기2) 8월(음력) 이었다. 소태산대종사는 대각 후 새로운 도덕회상 설립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8명을 선발하고, 한 달 뒤 공부할 비용과 사업할 자금을 예비하기 위해 회상 기성(會上期成)의 한 기관으로 방언조합을 설립했다. 방언조합은 소태산이 조합장이 되고, 8인 제자들이 조합원이 되어 정관을 초안하고 매달 음력 그믐까지 저축금을 수납하기로 정했다.

소태산이 솔선하여 구호동에 살던 집과 밭을 팔고, 가구와 놋그릇 등 살림기구를 처분하여 조합금으로 내놓았으며, 8인 조합원도 공동 투자했다. 이를 기반으로 소태산은 목탄업(木炭業)을 시작했다. 소태산이 갑자기 숯을 사들이게 된 이 처사는 보통 사람의 지견으로 짐작하기 어려운 선견지명이었다. 소태산은 대각 이후 1년 남짓 시국 관망차 길룡리 근방의 오일장을 돌아다니며 인심과 물가의 추이를 관망하는 한편 일인들이 벌이고 있는 간척사업 진행과정을 눈여겨 지켜보았다. 당시 구수산 일대는 주산물인 장작개비나 숯을 선진포나 강변나루로 내가는 일이 많아 목탄을 손쉽게 사들일 수 있었다.

1포(俵)당 25전 내지 30전에 사들인 목탄은 이듬해 봄 2원 50전 내지 3원으로 폭등을 보게 되어 7, 8개월 만에 열배나 되는 이익을 보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물가 폭등이었다. 방언조합은 자본금 1만원으로 간척사업을 시작했다. 1년간 조합원들의 공동작업으로 변변한 논배미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길룡리에 옥답이 생기고 매년 200여석의 수확을 보게 되었다. 이 간척답을 구호농장이라고도 부르고 정관평이라 이름했다. 소태산은 옥녀봉 기슭 바위에 9인의 조합원 이름을 새겼으며, 이를 제명바위라 한다. 〈朴龍德〉

 


▣ 이력사항

20160507 구 웹사이트 등록/고대진

20181226 이전 등록/고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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